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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랫동안 좋은 디자인을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일이라고 배워왔다. 더 빠르게, 더 간결하게, 더 적은 클릭으로, 더 매끄럽게. 브랜드 역시 같은 방향으로 달려왔다. 화면은 정돈되고, 문장은 짧아지고, 모든 과정은 즉시 완료되는 경험을 향했다. 분명 많은 불편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편해질수록 어떤 브랜드는 점점 기억에서 사라진다. 반대로 손으로 쓴 작은 카드, 미세하게 다른 표면, 괜히 한 번 더 열어보게 되는 패키지, 쉽게 설명되지 않는 공간의 분위기는 오래 남는다. 효율의 기준으로 보면 사라져도 될 요소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바로 그런 것들에서 브랜드의 진심을 느끼는 걸까?

고객 경험이 매끄러워 질수록 비슷해지는 브랜드

오늘날 브랜드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이미지 생성 도구는 몇 초 안에 분위기 있는 비주얼을 만들고, 템플릿은 전문적으로 보이는 패키지와 웹사이트를 손쉽게 구성한다. 브랜드가 감각적으로 보이기 위한 기본 비용은 낮아졌고, 보기 좋은 결과물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문제는 모두가 잘 만들 수 있게 되었을 때 시작된다. 알고리즘과 AI는 기존 데이터 안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고, 가장 익숙하며, 빠르게 이해되는 결과를 제안하는 데 능하다. 그 결과 브랜드는 더 세련되어지지만, 동시에 같은 질감의 이미지, 같은 미니멀한 공간, 같은 감성의 문장으로 수렴하기 쉬워진다.

이 흐름의 반대편에서는 디지털의 속도에서 잠시 거리를 두고, 손의 감각과 재료, 문화적 맥락, 불완전한 흔적을 다시 디자인 안으로 불러들이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 완성도가 부족해서 브랜드가 약해지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너무 완성되어 보여서, 너무 쉽게 분류되어서, 다른 브랜드와 구별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래서 오늘날 브랜드가 가져야 할 차이는 새로운 장식 하나가 아니라, 자동으로 정리되지 않는 감각 하나에 가까워진다.

핸드크래프트가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클래식해서가 아니다

손으로 만든 물건은 대량생산보다 느리고, 생산 효율도 낮다. 같은 제품이라도 형태와 표면에 작은 차이가 생기고, 완벽한 규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편차가 남는다. 한동안 이런 요소는 개선되어야 할 오차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모든 것이 동일한 품질로 빠르게 복제되는 환경에서는 오히려 그 편차가 가치가 된다.

나무, 가죽, 도자기, 천연 섬유처럼 성장과 숙성의 과정을 가진 소재는 마음대로 속도를 높일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흠집이나 색 변화, 손때와 같은 특유의 파티나가 생기고,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물건과 사용자가 함께 보낸 시간의 기록이 된다. 수작업 몰드로 만든 세라믹 표면이나, 오래된 레이스 기술을 현대적인 조명으로 옮긴 결과물은 단순히 예쁜 오브제가 아니다. 누군가의 시간과 기억이 물성 안에 남아 있다는 감각을 전달한다.

핸드크래프트가 다시 주목받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다. 빠르게 생산되는 것들이 채울 수 없는 감각이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제품의 기능만 구입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시간을 들였다는 느낌, 재료가 가진 자연스러운 차이,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자신에게만 주어진 것 같은 인상을 함께 산다.

브랜드에게 이 변화는 꽤나 중요하다. 모든 것을 일관성있게 만드는 일이 곧 브랜드 관리라고 믿어왔다면, 이제는 어디까지 다듬고 어디에서 손의 흔적을 남길지 고민해야 한다. 완벽하게 정리된 브랜드보다, 정교하게 살아 있는 브랜드가 더 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낭비는 불필요한 비용이 아니라 감정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브랜드에도 낭비가 필요하다’는 말은 더 큰 박스에 제품을 넣거나, 사용 후 곧바로 버려질 장식들을 늘리자는 뜻이 아니다. 지속가능성의 기준을 무시한 과잉 포장은 감동이 아니라 부담이다. 우리가 말하는 낭비는 자원의 낭비가 아니라, 효율의 관점만으로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 정서적 여분이다.

커피 한 잔은 종이컵에 담겨도 기능적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어떤 카페는 잔의 무게, 트레이의 재질, 냅킨의 접힘, 영수증에 찍힌 작은 문장 때문에 기억된다. 제품은 비닐 포장 하나로 충분히 보호될 수 있지만, 어떤 브랜드는 상자를 여는 순서, 종이의 촉감, 제품이 처음 드러나는 장면까지 설계한다. 배송은 알림 하나로 끝날 수 있지만, 짧은 손글씨 카드 한 장이 고객의 경험을 구매에서 관계로 바꾸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전환율이나 생산성 표 안에서는 부수적인 비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브랜드는 기능을 제공하는 순간보다, 기능 이상의 마음을 전달한 순간에 기억된다. 꽃집에서 꽃을 묶어주는 리본, 작은 식당에서 식사가 끝난 뒤 건네는 차 한 잔, 새 제품의 패키지를 여는 동안 일부러 조금 천천히 드러나는 구조는 모두 쓸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여분 때문에 사람은 “여기는 조금 다르다”고 느낀다.

브랜드의 낭비란 바로 그런 것이다. 마치 낭만이라는 개념이 지닌 성격과 비슷하다.

첫번째 기억, 패키지

패키지는 가장 쉽게 ‘낭비’로 지적되는 영역이다. 실제로 제품보다 큰 박스, 겹겹이 쌓인 플라스틱, 과도한 장식은 브랜드의 진심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장을 최소 보호재로만 다루면 브랜드가 고객의 손에 도착하는 결정적 순간 하나를 포기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패키지의 양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감각을 심어두는가다. 재활용 유리로 만든 병에 자연스러운 질감과 색의 편차, 생산 과정에서 생긴 흔적을 그대로 남기는 방식이 있다. 정돈되지 않은 유리 표면과 자연스럽게 왜곡되는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해 브랜드의 자유로운 성격을 보여주는 방식도 있다. 이런 패키지는 더 많은 장식을 덧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재료가 가진 불규칙함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보인다. 예전의 럭셔리한 패키지의 정교함, 완벽한 마감으로 가치를 말했다면, 이제는 소재의 정직함과 손의 흔적 등등이 브랜드의 신뢰를 쌓는다. 같은 병이 수천 개 찍혀 나와도, 표면의 작은 차이를 숨기지 않는 순간 제품은 공장에서 나온 물건을 넘어 하나의 경험이 된다.

좋은 패키지는 단순히 고급스러운 형태가 아니다. 고객이 버리기 전에 잠깐 멈춰 보게 만들고, 만져보고 싶게 하고, 브랜드의 태도를 단번에 이해하게 하는 형태이다. 자원을 덜 쓰면서도 더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지금 브랜드가 찾아야 할 낭비의 방식이다.

완벽하게 정돈되지 않은 것에서 손길을 느낀다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반듯함을 벗어나는 브랜드 표현이 늘고 있다. 손글씨처럼 보이는 타이포그래피, 선이 조금 삐뚤어진 드로잉, 사진 속에 남아 있는 먼지와 흔들림, 표면의 작은 기포나 비대칭, 제작 과정이 드러나는 영상들이다. 이전에는 덜 다듬어진 결과처럼 여겨졌던 요소들이 이제는 오히려 브랜드의 온도를 보여준다.

매끄러운 캠페인 이미지가 빠르게 평준화되는 상황에서, 일부 브랜드들은 고전적인 비율, 대칭, 완벽한 조명, 결점 없는 마감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흔적을 선택한다. 특히 패키지에서 손글씨와 불완전한 드로잉, 소재의 흔적이 다시 등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만드는 데 몰두했던 사람의 시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불완전함은 스타일로 흉내 내는 순간 다시 하나의 유행이 된다. 일부러 거친 종이를 쓰고, 일부러 삐뚤게 그린 로고를 얹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진정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계산된 어설픔을 알아본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핸드메이드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실제로 무엇에 시간을 쓰고 무엇을 쉽게 타협하지 않는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재료를 더 오래 고르고, 제품의 사용감을 더 많이 시험하고, 고객에게 전하는 작은 문장까지 직접 다듬는 과정이 있을 때, 불완전한 흔적은 연출이 아니라 태도가 된다.

마찰에서 탄생하는 기억

현대의 브랜드 경험은 불편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클릭 수를 줄이고, 결제를 빠르게 만들고, 배송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고객이 고민해야 할 단계를 없애는 것은 분명 좋은 디자인이다. 고객을 불필요하게 힘들게 만드는 브랜드는 오래 선택받기 어렵다.

그러나 모든 마찰을 없애는 것이 항상 좋은 경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좋은 디자인에는 때때로 사용자가 참여하고 느끼고 발견할 수 있는 마찰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삭제하기 전 한 번 더 확인하게 하는 버튼처럼, 어떤 멈춤은 주의를 만들고 책임감을 깨운다. 제품을 직접 조립해보는 과정, 재료를 만져보는 경험, 공간을 천천히 지나며 브랜드를 발견하는 시간도 같은 의미에서 기억을 만든다.

브랜드가 남겨야 하는 마찰은 불친절함이 아니다. 배송이 늦거나, 정보가 복잡하거나, 결제가 번거로운 것을 감성이라고 포장할 수는 없다. 그런 불편은 제거해야 한다. 대신 고객이 브랜드와 관계를 맺는 순간에는 약간의 참여와 발견이 필요하다.

자동으로 열리는 박스보다 손으로 한 번 풀어보는 매듭이 더 기억될 수 있다. 클릭하자마자 사라지는 구매 경험보다, 제품을 받고 한 장의 카드를 읽는 몇 초가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쇼룸에서 제품만 빠르게 확인하고 나가는 것보다, 브랜드가 건네는 차를 마시며 공간의 결을 느끼는 시간이 더 강한 신뢰를 만들 수 있다.


손글씨 한 줄이 고퀄리티 이미지보다 오래 남는 이유

디지털 도구는 표현의 속도를 극단적으로 높였다. 한 번의 입력으로 여러 장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쌓아낼 수 있다. 그럴수록 손으로 쓰고, 자르고, 붙이고, 고치고, 기다리는 행위는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느림이 사람에게는 다른 감각을 준다. 손으로 쓰는 일은 단순히 글자를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생각을 천천히 정리하고, 상대에게 시간을 들였다는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다. 수작업 종이와 제본, 조용한 패키징으로 만들어진 노트는 단순한 문구 제품을 넘어 생각과 손이 다시 연결되는 도구가 된다.

이 관점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동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메시지보다, 구매자의 상황에 맞춰 짧게 적힌 한 문장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빠르게 발행되는 콘텐츠보다, 브랜드가 오래 관찰하고 고른 하나의 이미지가 더 분명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다.

모든 브랜드가 손글씨 카드를 넣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의 흔적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다. 어떤 브랜드에게는 소재의 마감일 수 있고, 어떤 브랜드에게는 직원의 응대 방식일 수 있으며, 어떤 브랜드에게는 오래 고른 문장 하나일 수 있다. 효율적으로 복제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사람은 그 브랜드 뒤에 있는 사람을 상상하게 된다.

낭비를 설계하는 법

낭비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모든 비효율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고객이 원하지 않는 장식, 환경에 부담을 주는 포장, 사용성을 방해하는 복잡함, 브랜드와 관계없는 감성 연출은 좋은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비용이거나 노이즈다.

브랜드에 필요한 낭비는 세 가지 조건을 가져야 한다.

첫째, 기능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구매, 사용, 문의, 배송, 교환처럼 고객이 분명한 목적을 가진 순간에는 경험이 명확하고 편리해야 한다. 브랜드가 남겨야 하는 여백은 기본적인 편의를 해친 뒤에 붙이는 변명이 아니다.

둘째, 브랜드의 태도와 연결되어야 한다. 수작업을 강조한다면 실제 제품과 과정에도 손의 개입이 있어야 하고, 지속가능성을 말한다면 포장은 감성만큼 자원 사용도 설득 가능해야 한다. 낭비는 꾸며낸 느낌이 아니라, 브랜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보이는 방식이어야 한다.

셋째, 기억되는 감각이어야 한다. 고객은 브랜드가 얼마의 제작비를 들였는지 모른다. 대신 상자를 열었을 때의 촉감, 매장에서 들었던 소리, 받은 카드의 문장, 제품 표면의 미묘한 차이, 사용하는 동안 변해가는 재료의 표정을 기억한다. 낭비는 돈을 더 쓰는 일이 아니라, 기억될 감각에 더 정확히 쓰는 일이다.

이제 단순한 효율만으로는 부족하다

브랜드는 기본적으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제품은 제대로 작동해야 하고, 서비스는 편리해야 하며, 커뮤니케이션은 명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브랜드가 점점 더 빠르고, 더 매끄럽고, 더 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될수록, 사람들에게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왜 이 브랜드여야 할까.

그 답은 종종 효율의 반대편에 있다. 손으로 한 번 더 다듬은 표면, 굳이 남겨둔 여백, 빠르게 넘기지 못하게 만드는 공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싶어지는 패키지,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배려. 기능만 계산한다면 줄일 수도 있었던 것들이, 브랜드를 좋아할 이유가 된다.

우리는 브랜드를 불필요한 장식으로 부풀리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만큼은 남겨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품은 효율적으로 작동해야 하지만, 브랜드 경험까지 그렇게 기억될 필요는 없다. 어떤 브랜드에는 한 번 더 만져보게 만드는 소재가 필요하고, 어떤 브랜드에는 잠시 머물게 하는 공간이 필요하며, 어떤 브랜드에는 너무 반듯하게 정리하지 않은 문장 한 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만들어지는 시대에는, 시간을 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브랜드가 끝까지 지켜야 할 낭비는 바로 그 메시지를 남기는 일이다.


참고문헌 | iF Design & The Future:Project, iF Design Trend Report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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