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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차려진 접시를 떠올려 보자. 소스는 화려하고, 장식은 정교하고, 플레이팅은 흠잡을 데 없다. 그런데 한 입 먹고 나면 정작 무엇을 먹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재료의 맛보다 꾸며진 인상이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브랜드도 비슷하다. 로고는 세련되고, 컬러는 감각적이고, 문장은 그럴듯한데 이상하게 남는 것이 없는 브랜드들이 있다. 문제는 표현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얹느라, 그 안에 원래 있던 맛이 가려진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브랜딩은 브랜드 위에 무엇을 더하는 일일까, 아니면 그 안에 이미 있던 것을 제대로 꺼내는 일일까.

브랜드가 밋밋해지는 진짜 이유

우리는 오랫동안 브랜딩을 무언가를 얹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로고를 얹고, 컬러를 얹고, 세련된 사진과 감각적인 문장을 얹는 일.

그래서 브랜드가 밋밋하게 느껴질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도 비슷하다. 더 좋은 디자인, 더 트렌디한 스타일, 더 화려한 캠페인.

최근 하이엔드 다이닝 브랜드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셰프들의 철학과 요리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정반대의 사고방식이었다. 좋은 요리는 재료에 무언가를 더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재료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맛을 밖으로 꺼내며 완성된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어떨까.

좋은 셰프는 재료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자기 세계를 쌓아온 셰프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공통된 태도 하나가 보인다. 그들은 요리를 단순히 자기표현의 수단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재료와 손님 사이에 서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이 채소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이 생선이 어느 계절의 바다를 지나왔는지.
이 고기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지.

요리의 많은 부분은 불 앞에서가 아니라, 재료를 읽는 눈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수준 높은 주방일수록 접시가 조용하다. 재료에 자신이 없는 주방은 소스가 진해지고, 향신료가 강해지고, 플레이팅이 화려해진다. 접시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많지만, 정작 재료가 무슨 맛이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반대로 좋은 주방은 첨가보다 추출에 가까운 일을 한다. 불의 세기, 시간의 길이, 소금의 양은 재료 위에 무언가를 덮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재료 안에 이미 있던 맛을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해 존재한다.

두 주방의 차이는 기술보다 태도에 가깝다. 한쪽은 재료를 이기려 하고, 다른 한쪽은 재료를 믿는다. 그리고 이 차이가 요리의 격을 만든다고 간접적으로 느꼈다.

소스가 먼저인 접시, 재료가 먼저인 접시

브랜딩에도 비슷한 차이가 있다. 어떤 브랜드는 소스가 먼저 올라간 접시처럼 만들어진다. 비즈니스의 본질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위에 보기 좋은 스타일을 먼저 얹는 방식이다.

지금 유행하는 컬러 팔레트.
어디선가 본 듯한 미니멀한 공간.
그럴듯하게 감성적인 문장들.

결과물은 분명 보기 좋아진다. 론칭 직후의 반응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소스가 진할수록 첫인상은 강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재료의 맛이 남는다. 트렌드에는 유통기한이 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스타일은 결국 누구나 쓴다. 시간이 지나 표면의 무드가 걷히고 나면 브랜드 안에 있던 원래의 재료가 드러난다. 그 재료가 처음부터 흐릿한 상태였다면, 브랜드는 몇 년 뒤 같은 고민 앞에 다시 서게 된다. 이번에는 리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반대로 어떤 브랜드는 재료를 먼저 읽는다. 무엇을 더할지 묻기 전에, 이 브랜드 안에 이미 어떤 맛이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방식이다. 창업자가 이 일을 시작하게 만든 장면. 경쟁사가 흉내 낼 수 없는 일하는 방식. 고객이 말로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느끼고 있는 감각. 이런 것들은 대부분 이미 그 비즈니스 안에 있다. 다만 정리되지 않은 채로 창업자의 머릿속, 조직의 습관, 고객의 경험 속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이때 디자인과 언어의 역할은 접시 위를 장식하는 일이 아니다. 브랜드 안에 이미 있던 맛을 세상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거친 결과물 앞에서 창업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새롭다”는 감탄보다, “이게 원래 우리였다”는 알아봄에 가깝다. 새로움은 감탄을 만들지만, 알아봄은 확신을 만든다. 그리고 브랜드를 오래 끌고 가는 힘은 감탄보다 확신에 가깝다.

왜 맛이 밍밍해지는 걸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브랜드가 밋밋하다는 것이 곧 재료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요리의 세계에서 재료가 맛없는 경우보다 더 흔한 것은, 재료가 제대로 손질되지 않은 경우다. 좋은 부위와 버릴 부위가 분리되지 않고, 씻기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채 냉장고 안에 뒤섞여 있는 상태. 이 상태에서는 어떤 화력도, 어떤 소스도 재료를 살리지 못한다. 문제는 재료가 아니라 손질에 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나온 많은 브랜드는 꺼낼 것이 없어서 밋밋한 것이 아니었다. 꺼낼 것이 정리되지 않아서 밋밋했다. 창업자에게는 분명한 이유와 태도가 있는데, 그것이 한 번도 언어로 옮겨진 적이 없다. 조직에는 고유한 일하는 방식이 있는데, 그것이 브랜드의 이야기로 연결된 적이 없다. 좋은 재료가 손질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브랜딩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인이 시작되기 전에 있다. 주방이 서비스를 열기 전 재료를 씻고, 다듬고, 분류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듯이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창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흩어진 생각을 분류하고, 지킬 것과 버릴 것을 가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쓴다.

그 시간은 결과물에 직접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물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시간이다. 로고 시안이 첫 미팅에서 바로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도 재료다

요리의 세계가 알려주는 또 하나의 사실은, 시간 역시 재료라는 것이다. 숙성은 방치와 다르다. 같은 고기라도 그냥 두면 상하고, 온도와 습도와 바람을 설계해두면 깊어진다. 시간 자체는 중립적이다. 어떤 조건 속에서 시간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시간은 재료를 망치기도 하고 완성하기도 한다. 발효와 숙성에 오랜 시간을 들이는 주방들이 실제로 설계하는 것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시간이 재료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도록 만드는 조건이다.

브랜드에게도 이 관점은 중요하다. 오래된 브랜드가 모두 깊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브랜드는 세월과 함께 낡아가고, 어떤 브랜드는 세월을 자산으로 바꾼다. 그 차이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기준의 유무에 있다. 무엇을 끝까지 지키고, 무엇을 유연하게 바꿀지에 대한 기준이 있는 브랜드에게 시간은 숙성이 된다. 반대로 기준이 없는 브랜드에게 시간은 낡음이 된다.

그러니 브랜딩의 목표는 지금 당장 예뻐 보이는 것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도 브랜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견딜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좋은 브랜드는 론칭하는 날이 아니라, 론칭하고 오 년이 지난 뒤에 더 분명하게 증명된다.

브랜드의 원재료를 묻는 세 가지 질문

브랜딩을 고민하고 있다면, 스타일을 고르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들이 있다.

첫째,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매출과 성장 너머에,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다. 이 답이 흐릿하면 어떤 슬로건도 결국 빌려온 문장처럼 들린다.

둘째, 우리는 남들과 무엇을 다르게 하는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의 차이를 묻는 질문이다. 결과는 흉내 낼 수 있지만, 일하는 방식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다. 브랜드의 진짜 재료는 대부분 여기에 있다.

셋째, 고객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느끼는가.
리뷰와 재방문 사이 어딘가에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감각이 있다. 브랜딩은 종종 그 감각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

이 질문들에 지금 당장 명쾌하게 답할 수 없어도 괜찮다. 애초에 혼자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고, 그 답을 함께 찾아 꺼내는 것이 브랜딩 스튜디오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아시아그래피는 브랜딩이 밋밋한 재료를 그럴듯하게 덮어주는 소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브랜딩은 이미 존재하는 본질을 손질하고,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설계해, 그 안에 있던 맛을 세상이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좋은 셰프가 재료를 이기려 하지 않듯이, 좋은 브랜딩은 브랜드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 있던 것을, 가장 정확한 형태로 꺼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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